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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미 그린 달빛 홍경래의 난

category 잡동사니&꿀팁 2016. 9. 18.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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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홍경래의 난에 대해 알아봅시다 ㅎㅎ

구르기 그린 달빛

뜬금 없이 왠 홍경래의 난이냐구요?
저희도 대세에 따라야죠
요즘 대세 드라마 구르미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홍경래의 난 이 나오잖아요
뭐든 배경지식을 알고 보면 더 흥미진진하고 재밌답니다
(물론 제생각입니다 하하핳)

그래서 저는 항상 사극 같은 드라마를 보면 사전에 또는 보는 도중
역사적 배경과 사실을 다시한번 공부 하고 봅니다.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되어 버렸어요 ㅎ
그래서 저번에도 호명세자에 대해 한번 포스팅 했답니다.

간단하게 밑에 백과사전 한번 보실게요.


홍경래의 난

 ]
요약
19세기 초 홍경래·우군칙() 등의 주도로 평안도에서 일어난 농민항쟁.
19세기 농민의 봉기

19세기 농민의 봉기19세기 세도정치로 인해 국가 기강이 해이해지면서 탐관오리의 부정은 극에 달했고, 농민들의 삶은 점차 피폐해져 갔다. 이에 농민은 종전의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항거, 봉기 등의 적극적인 방법으로 지배층의 부패에 대응했고, 이러한 움직임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조선 후기에 사회·경제적인 역량이 성장함에 따라 여러 사회모순에 대한 저항의 분위기가 확산되어 갔다. 교육 기회가 늘어남에 따라 지식인이 양산되고, 경제력을 바탕으로 무사로서 입신하려는 사람들도 많아짐에 따라 정부에서는 문무 과거의 급제자를 크게 늘렸지만, 종래의 관직체제와 인재 등용 방식으로는 더 이상 그들을 포섭할 수 없어 불만 세력은 점점 늘어났다.

1728년(영조 4)의 이인좌난()은 주도층이 비록 과격한 소론 중심의 지배층이었지만 중간층 및 하층민들이 적극 참여함으로써 기층 세력의 저항이 격화되는 양상을 반영하였다. 특히 평안도는 활발한 상업 활동을 바탕으로 빠른 경제 발전과 역동적인 사회상을 보이고 있었으나 정치권력으로부터 소외되어 지역민들의 불만이 더욱 컸다.

홍경래는 평안북도 용강군 다미면()의 평민 출신으로 평양 향시를 통과하고 유교와 풍수지리를 익힌 지식인이었다. 입신양명을 위해 한양에서 대과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였다. 당시 한양에서 치뤄지는 대과에서 시골 선비에 대한 차별이 심하여 과거를 통해 관직에 나아가기가 어려웠다. 더구나 평안도 서북출신인 홍경래에게는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조선초 서북출신들은 고려의 유민으로 구분되어 등용되지 못했고 이후 천한 신분으로 여겨졌다. 이런 현실에 낙담하여 세상을 바꿀 결심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홍경래는 봉기 10년 전부터 각처를 다니며 사회 실정을 파악하고 동료들을 규합하였다. 그리하여 비슷한 성격의 지식인이자 상인인 우군칙, 명망 있는 양반 가문 출신의 지식인 김사용()·김창시(), 역노() 출신의 부호로서 무과에 급제한 이희저(), 장사로서 평민 출신의 홍총각()과 몰락한 향족() 출신의 이제초() 등이 최고 지휘부를 구성하였다.

이들의 신분과 생업은 매우 다양할 뿐 아니라 복잡하게 뒤섞여 있었지만, 용력을 갖춘 지식인이 총지휘를 하고 저항적 지식인이 참모를 맡았으며, 부호가 봉기 자금을 대고 뛰어난 장사들이 군사 지휘를 담당하는 형태가 되었다. 그 밑에 평양의 양시위(), 영변의 김운룡()을 비롯한 장사들이 군사 지도자로 참여하였다. 이 장사들은 주로 홍경래의 조직활동에 의해 봉기의 인근 지역뿐 아니라 멀리 평안도 남부 및 황해도로부터 모여든 인물들이었으며, 봉기 당시 30~40명 가량이 적극적으로 항쟁하였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홍경래의 난 [洪景來─亂] (두산백과)


간단 하게 알아 보았습니다. 

호명세자 (박보검)


즉 세도정치 (순헌철) 로 인해 왕권은 약해질대로 약해지고


그로인해 왕권이 약해지고


제대로 된 인재가 등용되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똑똑해도 권력있는 가문에 뇌물을 바쳐야지

관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관리가 된 탐관오리들은 

뇌물을 바치느라 읽은 돈을 백성들에게서 채우려고

세금을 마구 걷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흉년까지 겹쳐

백성들의 생활은 많이 궁핍해졌습니다.

이런 때에 홍경래가 농민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드라마에서 홍경래의 딸 홍라온 역을 맡은 김유정)

1811년 12월 18일(순조11년) 평안도 농민전쟁인 ‘홍경래 난’이 일어났다.


 1811년 12월부터 1812년 4월까지 발생한 조선시대 최초의 민란이었다.

당시 세도정권 하에 흉년과 전염병이 나돌아 조정은 민심을 잃어가고 있었다. 또,


 유언비어와 앞날의 길흉을 예언하는 도참설이 나돌고 조정을 비방하는 벽보가 붙기도 했다. 


이 민란의 직접적인 이유는 서북인에 대한 차별 때문이었는데 당시


 권문세가의 노비까지도 서북인을 멸시했다고 한다.

당시 이들의 힘이 얼마나 막강했냐면 남자를 여자로 바꾸는것 빼고 

뭐든지 다 할수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 홍경래의 난 이 일어나게 된 상황과 당시 시대적 배경에 대해 알아 보았습니다.~

많은 도움 되셨나 모르겠네요.

전 다시 구르미 보러 가야겠습니다. 

효명세자와 홍라온..보러!!갑니다

슝...~ㅎㅎ









bybyby 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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